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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한뼘 산문...📖

삐뚠 안경

안경이 삐뚤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안경을 쓰는 나는 알 수 있다. 전반적인 만듦새를 봤을 때 좌우 균형이 안 맞고 심지어 왼쪽 다리와 오른쪽 다리의 길이가 다르다. 림, 브릿지, 코 기둥, 자세히 볼수록 불협화음이 크게 들린다. 저렴한 안경이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쓰기도 참 오래 썼다.

오늘따라 더욱 신경 쓰이는 안경을 이리저리 손으로 만져본다. 휜 다리를 펴고 코 기둥을 조절한다. 몇 번을 해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제는 안경이 삐뚠 건지, 내 얼굴이 삐뚠 건지 모르겠다. 아침부터 짜증이 몰려온다.

짜증이 났다. 안경이 삐뚤러서. 그리고 내가 그걸 고칠 수 없어서. 나는 안경 하나 고치지 못하는 인간이다. 그러고 보면 난 인생에서 고치고 싶은 것들이 참 많았다. 그 고쳐야 할 것들에 망치질은 몇 번 해봤으나,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 무기력한 인간. 부정적인 감정이 몰려온다. 왜 이렇게 짜증이 나지? 다른 사람들도 이럴까? 그럴 리가. 아마 나만 이 모양일 것이다. 삐뚠 건 아무래도 내 마음이었나 보다. 

한숨을 돌리고 안경을 썼다. 여전히 삐뚤다. 거울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방금보다 나은 것 같다. 아니, 솔직히 이 정도 거리만 돼도 별로 신경 쓰이지 않는다. 나는 내 삶을 너무 가까이서 보고 있었던 것 같다. 고칠 것은 많지만, 고친 것도 있겠지. 안경 하나 새로 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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