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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우주 여행기...🚀

가능성의 요람

우주, 이곳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신비로운 곳입니다. 무수히 많은 항성과 행성들이 저마다의 이유로 우주를 헤엄치고 있습니다. 우주 어딘가의 성간 물질이 핵융합을 일으켜 새로운 별이 되기도 하고, 자신의 질량을 이기지 못한 별이 폭발하기도 하며, 별을 으스러뜨린 중력이 빛마저 빨아들이곤 합니다. 우리 입장에서의 이 과정은 마치 멈춰 있는 듯 아득히 긴 시간에 거쳐 일어나지만, 우주 입장에서는 찰나의 순간일지도 모릅니다. 시간은 저마다 다르게 흐르니까요.

그런 와중에 우주를 부유하는 먼지들도 있습니다. 그저 고요하게 부유하는 먼지입니다. 그들 중 일부는 서로 충돌하여 때로는 더 큰 먼지로 합쳐지기도 하고 때로는 부서지기도 합니다. 그렇게 어느새 몸을 부풀린 먼지들의 집합은 행성이 됩니다.

행성이 된 먼지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행성들은 여전히 아무런 목적 없이 우주를 떠돌아다닙니다. 여전히 다른 행성에 부딪혀 파괴되기도 하고 커다란 별에 잡아 먹히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별의 중력이 적절히 닿는 궤도에 행성이 몸을 올린다면, 그 행성은 하염없이 별을 중심으로 공전할 것입니다.

여기 별 하나를 동반자 삼아 돌고 있는 붉은빛의 행성이 있습니다. 좀 더 가까이서 확인해보죠. 행성은 만들어진 지 얼마 안 된 듯합니다. 충돌로 인한 에너지로 인해 대지가 들끓고, 형태가 끊임없이 변형됩니다. 행성의 중력에 이끌린 소행성들이 계속해서 행성의 표면을 두드립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요? 충돌이 멎고 행성이 진정됩니다. 열기가 식고 우주를 표류하던 가스가 행성에 닿습니다. 서서히 대지와 대양이 나뉘고 대기권이 형성됩니다. 멀리서 봤을 때 붉은빛이던 행성이 어느새 푸른빛으로 바뀌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가지각색의 행성들이 보입니다. 가스가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행성, 셀 수 없이 많은 위성을 가진 행성, 별 가까이서 타오르며 빠르게 공전하는 행성, 그중에서도 이 푸른 행성의 모습이 단연 돋보입니다.

푸른 행성을 중심으로 회색의 작은 행성이 조용히 맴돌고 있습니다. 푸른 행성이 만들어질 때 파편들이 모여 만들어진 행성입니다. 이 회색 행성은 푸른 행성의 위성이라고도 부릅니다.

이 두 친구는 언뜻 보면 그리 친해 보이지 않습니다. 서로의 크기에 비해 두 행성 사이의 거리는 굉장히 멀어 보입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는 이 광활한 우주를 설명하기에 턱없이 부족합니다. 함께하고 있는지도 모를 만큼 멀리 있는 위성은, 푸른 행성에 상당한 영향을 줍니다. 위성의 인력으로 인해 푸른 행성의 물질들이 순환합니다. 온도가 안정화되고 바다에는 파도가 칩니다. 아무리 멀리 있어도 서로의 존재를 어렴풋이나마 확인하게 됩니다.

푸른 행성 면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물, 그곳에 아주 작은 유기물이 있습니다. 이 유기물이 어디서 왔는지 아직 우리는 모릅니다. 대지가 요동치던 시절, 높은 에너지와 격렬한 화학반응에 우연히 만들어졌거나, 우주를 떠도는 먼지들이 행성의 환경과 만나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됩니다. 혹은 미지의 존재가 실수로 놓고 간 분실물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원리로 유기물이 만들어졌든 그 가능성이 매우 희박할 것이라는 겁니다. 그러나 몇억, 몇십 억, 몇백 억의 확률일지라도 가능성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불가능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행성의 온도, 행성의 습도, 물의 존재, 대기의 존재, 계절의 존재, 낮과 밤의 존재, 파도의 존재가 마침 이 유기물이 활동하기 좋은 환경인 것은 우연일까요, 운명일까요? 유기물과 무기물이 반응하여 원시세포가 되고, 생명이 태동하기 시작합니다.

원시세포는 그 자체로 하나의 우주입니다. 거대한 크기로 주변을 비추는 항성도, 우주를 떠도는 먼지도, 그들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작은 원시세포도, 어느 것이든 무한한 가능성을 가졌습니다. 무한에도 크기가 있습니다. 원시세포의 무한은 우리가 멀리서 행성 단위로 본 우주의 무한보다 조금 작을 뿐입니다.

원시세포는 물 안의 물질들과 반응해 분열과 소멸을 반복합니다. 그 과정에서 어떤 세포들은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진화합니다. 세포들은 동물이 되고, 식물이 됩니다.

진화는 환경에 맞춰 적응하는 것입니다. 물에 잉크를 한 방울 퍼뜨리는 것처럼, 목적이나 방향 없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뻗어 나갑니다. 어떤 동물은 자기보다 작은 동물을 잡아먹는 행위로 생명을 유지합니다. 세포를 더 쉽게 찢기 위해 날카로운 이빨을 가지고, 소화기관에서는 단백질을 녹일 수 있는 효소가 나옵니다.

포식자를 피하는 방식도 저마다 다릅니다. 어떤 동물은 유선형의 모양으로 더 빨리 헤엄치는가 하면, 어떤 동물은 주변 식물들과 비슷한 색깔로 위장을 하고, 또 어떤 동물은 바닥에 누워 모래로 몸을 덮어 숨습니다. 진화의 방식에 정답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진화가 종간의 우월성을 나타내지도 않습니다. 불규칙적이고 불완전하며, 때로는 비논리적입니다. 그래서 우주가 아름다운 것이겠지요.

여기 인간 하나가 있습니다. 이들은 비슷하게 생긴 다른 영장류들과 달리 나무를 잘 오르지 못합니다. 다른 육상 동물들처럼 달리기가 빠르지도 않습니다. 그렇다고 지느러미나 날개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주야에 상관없이 사냥감이 잘 보이는 눈, 여러 개의 위, 호흡할 수 있는 피부, 그 어떤 것도 가지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신체적인 한계와 달리 지능은 푸른 행성의 어떤 동물들보다도 높습니다. 도구를 사용하여 몸을 지키고 생태계에 적응하는 방식으로 진화를 한 것입니다. 그러나 지능이 높다고 해서 항상 지혜로운 것은 아닙니다.

기본적인 욕구를 채운 인간은 거기에 그치지 않고 더 많은 것을 갈구합니다. 모피 옷으로 체온을 지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물 사냥에 나섭니다. 상품의 가치를 떨어뜨릴 수 없다는 이유로 산 채로 고통스럽게 동물들의 가죽을 벗깁니다. 무분별한 사냥으로 소비할 수 없을 만큼 쌓인 고기는 땅과 바다에 버립니다. 어떤 동물들은 송곳니를 뽑히고 자연에 내던져집니다. 강제로 송곳니가 뽑힌 육식 동물들은 쇼크사하거나 사냥을 제대로 하지 못해 굶어 죽습니다. 또 어떤 바다 생물들은 대량으로 포획돼 지느러미만 잘린 채 바다에 내팽개쳐집니다. 지느러미가 잘린 생물은 균형을 잃고 제대로 헤엄치지 못해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외롭게 죽습니다. 수없이 다양한 식물은 과하게 벌목되고 채집되어, 초록색으로 빛나던 땅이 점차 사라져 갑니다. 무엇이 더 모자랐던 것일까요? 나아가 인간은 동족마저 노예로 삼고, 학대하고, 죽입니다. 그들은 푸른 행성의 주인이 되고자 합니다. 우주의 관점에서 보면 본인들이 밟고 있는 모래 알갱이보다 작은 존재일 텐데 말이죠.

수많은 희생을 치르며 인간의 문명은 발전해 나갑니다. 철학, 물리학, 화학, 수학, 천문학, 공학, 이제 그들은 우주를 헤아리기 위해 노력합니다. 어떤 노력에도 아득한 우주를 아직 이해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예측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우주를 관측하던 인간은 푸른 행성이 있는 방향으로 무언가 가까워지는 것을 알게 됩니다. 소행성 지대에서 충돌로 떨어져 나온 행성입니다. 이대로 부딪히면 푸른 행성은 산산이 부서질 것입니다.

푸른 행성을 파괴하며 삶을 만끽하던 인간은 이번엔 푸른 행성을 지키려고 합니다. 저명한 물리학자들은 다가오는 소행성의 궤도를 유추합니다. 천문학자들은 소행성에 적절한 충격을 주어서 그 궤도를 바꿀 수 있다고 분석합니다. 다양한 문명의 지도자들은 서로를 위협하던 핵무기와 미사일로 힘을 모아 소행성을 타격할 것을 합의합니다. 일반 시민들은 그저 모두가 무사하길 기도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과학 불신론자들은 현재 상황이 모두 사기꾼들에 의해 꾸며진 것이라고 비난합니다. 신앙심을 가진 일부 종교인들은 그동안의 악행이 쌓은 업보로 인해 벌을 받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도 소행성이 더 가까워집니다. 적절한 시기에 핵무기와 미사일이 발사됩니다. 모두가 숨을 죽인 채 위성에 연결된 카메라로 상황을 지켜봅니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합니다.

한순간에 푸른 행성의 파편들이 우주로 흩뿌려집니다. 행성이 시작할 때의 먼지와 가스로 돌아갑니다. 푸른 행성을 돌던 회색의 위성은 인력을 잃고 어디론가 길을 떠납니다.

인간은 소행성의 충돌을 예측했지만, 막지는 못했습니다. 서로를 죽이던 무기들도 그들에 비해 거대한 충돌체 앞에서는 보잘것없었습니다. 기도를 들어주는 존재도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벌을 받은 것도 아닙니다. 그냥 사고가 났을 뿐입니다. 우연히 발에 밟힌 벌레들처럼요.

우주는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푸른 행성이 사라져도 우주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서로를 잡아당기던 별도 무심합니다. 함께 같은 별을 공전하던 행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마 푸른 행성이 있었는지조차 모를 겁니다. 주위에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별들과 행성들이 있는데 봐주는 이 하나 없다니요. 우주의 모든 것들이 그 외로움을 안고 살아갑니다.

인간이 사라지기 전까지 닿은 지식에 의하면, 우주를 구성하는 어떤 물질이든 가능성으로 태어나 가능성으로 사라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합니다. 무한한 가능성을 품은 우주에서 푸른 행성과 같은 행성이 또 만들어질 수 있을까요? 아니면 이미 존재하고 있을까요? 그 안에 생명이 있을까요? 있다면 그들은 어리석을까요, 현명할까요? 어리석음과 현명함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우주는 어떤 것도 될 수 있기에 아름다운 것일까요? 혹은 어떤 것도 사라질 수 있기에 허무한 것일까요? 우주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면 저기 무수히 빛나는 별만큼이나 다양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주, 이곳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신비로운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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