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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담은 이야기...🦍

생물의 한 부분, 흔적기관

생물은 무작위로 발생합니다. 무작위로 태어난 생물이 무작위 환경에서 살아남는 것을 진화라고 해요. 예를 들어 개과 동물은 털이 풍성한 개체와 그렇지 않은 개체가 있습니다. 평균 기온이 낮은 극지방에서는 풍성한 털옷으로 체온을 보호할 수 있는 개체가, 무더운 사막에서는 털이 짧아 열을 쉽게 배출할 수 있는 개체가 더 많이 살아남을 겁니다. 그 자연스러운 선택이 오랜 기간 지속되면, 같은 여우라도 각각 북극여우와 사막여우의 차이처럼 전혀 다른 모습에 닿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필요한 기관은 발달하고, 그렇지 않은 기관은 퇴화되기도 합니다. 흔적기관은 퇴화의 흔적입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해보입니다. 진화가 생존이라면, 지금 살아가는 모든 존재가 진화하고 있다고 말해야 합니다. 진화하는 생물들에게 퇴화하는 기관이 있다니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사전적으로 진화는 더 나은 곳으로 나아가는 듯한 어감을 가지지만, 과학에서는 그런 의미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사랑니는 퇴화되고 있지만 인간이란 종은 계속 진화하고 있습니다. 진화와 퇴화가 반대되는 개념이 아니라, 진화의 한 부분이 퇴화인 것입니다. 진화가 숭고한 것도 아니고 퇴화가 저열한 것도 아닙니다. 인간 뿐 아니라 그 어떤 종이라도 똑같습니다.

만화에서는 사랑니가 퇴화되는 이유를 ‘질긴 이파리를 먹지 않기 때문’ 하나의 이유만 설명드렸는데요, 사실 환경이라는 변수는 보통 한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먹이를 포함하여 기온, 습도, 기후, 주변 생물의 종류, 주변 생물의 개체 수, 같은 종 내의 성비… 등등등 복잡하고 수많은 상호작용을 포함합니다. 또, DNA에 종을 구분할 만큼의 유의미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도록 아주 오랜 기간동안 그 변칙적인 환경조건이 반복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어떤 생물에 대하여 ‘왜 이렇게 진화했을까’란 질문에 답을 내리기 상당히 어렵습니다.

예컨데, 찰스 다윈은 기린이 긴 목을 가진 이유를 먹이 경쟁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기린의 조상은 높은 나무에 매달린 이파리를 선호했고, 그 이파리를 먹지 못한 개체는 도태됐다는 것입니다. 어떤 연구는 햇빛이 강렬한 사바나 지역에서 생존하기 위한 전략이라고도 합니다. 햇빛이 하늘에서 내리 쬘 때, 목이 길면 몸집 대비 빛이 닿는 면적이 적다는 것입니다. 또 최근의 연구 중 하나는 성선택 때문이라고 합니다. 기린의 조상의 목 뼈를 분석해본 결과, 충격을 버티기 용이하다는 것을 알아냈고 이를 바탕으로 수컷들이 암컷에게 잘 보이기 위해 힘을 과시하며 경쟁했다는 것입니다. 기린의 목이 길어진 결정적인 이유가 이 가설들 중 하나일 수도 있고, 어쩌면 셋 다 관여했을 수도 있습니다. 혹은 전혀 다른 이유가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현재의 몇 가지 단서들로 먼 과거를 유추해야 하기 때문에 진화의 명확한 이유를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어쩐지 우리네 삶 같기도 합니다. 내가 오늘에 닿기까지 과거에 수많은 변수들이 지나쳤을 거예요. 그 어떤 변수라도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존재하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달리 말하면, 그 모든 변수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존재하는 것이에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을 밝혀주는 다양한 흔적들이 남았을 겁니다. 

걸어갈 길이 막막할 때, 가끔 뒤를 돌아 발자국을 보면 괜시리 위로가 됩니다. 걸어온 길이 헛되지 않았음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만화와 글을 읽어주신 분들 모두 위로 받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오늘도 내일도 좋은 하루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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