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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담은 이야기...🦍

이게 달팽이야 나뭇잎이야

푸른민달팽이의 학명은 ‘Elysia Chlorotica’입니다. 매체에 따라 학명을 음독하여 ‘엘리시아’ 혹은 ‘엘리시아 클로로티카’라고 기입하기도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한글 이름을 좋아하기 때문에 만화에는 몇몇 매체에서 먼저 번역된 푸른민달팽이라는 이름을 차용했습니다. 

사실 인간도 광합성을 이용하는 동물입니다. 식물들이 내뿜는 산소를 마음껏 마시고 있으니까요. 전문 용어와 일상 용어의 의미가 다른 경우가 있죠. 생명과학에서 공생은 어떤 종이 다른 종과 서로 생존에 영향을 미칠 만큼의 긴밀한 관계를 이야기합니다. 반면 사전적 의미로, 넓은 의미로서의 공생이란 단어를 생각해 보면, 생태계에 속한 모든 생물이 공생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광합성을 하는 생물들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만들어 냅니다. 인간 같은 동물은 산소를 소비하여 이산화탄소를 방출합니다. 서로의 부산물이 서로의 자원이 되는 것입니다.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이러한 거대한 흐름을 ‘지구 차원에서 실현되는 일종의 구강대 기공의 인공호흡’이라고 표현합니다. 정말 멋진 말이네요. :)

그런 관점에서 푸른민달팽이의 생태는 눈에 띌만합니다. 단순하게 에너지원으로써 먹이를 소비하는 걸 넘어 먹이의 능력 자체를 흡수하니까요. 당연히 다른 복족류들은 식물이나 조류를 먹어도 광합성을 못 합니다. 진화를 거슬러 올라가면 푸른민달팽이의 아주 먼 조상도 다른 복족류들처럼 광합성 능력이 없었을 겁니다. 

진화에는 방향성이 없습니다. 제가 광합성이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채소를 많이 먹는다고 해서 녹색인간이 되지 않는 것처럼 말이죠. 진화는 오랜 기간에 거쳐 일어나고, 그 기간 동안 수많은 우연과 변수가 실타래처럼 엉킵니다. 그렇게 현재의 푸른민달팽이가 탄생한 겁니다. 광합성을 하는 동물이라니! 너무나 특별하고 말로 설명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 어떤 책에서 비교는 가장 간단한 자기 평가 방법이라는 문구를 읽었습니다. 내 앞에 있는 벽이나 주변에 있는 사물들을 보고 나의 위치를 파악하듯, 타인을 보며 나의 위치를 쉽게 알 수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TV나 유튜브에 나오는 멋진 삶을 보면, 내 삶이 어쩐지 초라해 보입니다. 그런데 ‘더 나은 삶’이란 것은 정량적인 수치로 나타낼 수 있는 것이 아니죠. 광합성을 하는 푸른민달팽이도 물론 멋지지만, 푸른민달팽이가 멋지다고 해서 다른 생물들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모든 생물들이 특이하거든요. 인간은 형제자매들이 생활하는 나무에서 벗어나 이족보행을 하고 도구를 사용하여 문명을 이룩한, 생태계에서는 이례적으로 기이한 동물입니다. 기린은 목의 길이가 자신의 몸의 길이와 비슷하여 평생 고혈압을 달고 삽니다. 고래는 지느러미를 버리고 뭍으로 나와 살다 다시 바다로 돌아가 다리를 버리고 지느러미를 택했습니다. 바비루사는 멋진 엄니로 암컷을 유혹하지만, DNA를 남기고 나면 끝없이 자라는 엄니에 되레 목숨을 잃습니다. 넙치는 다른 바다 생물들처럼 좌우 대칭의 얼굴을 가지고 태어나는데, 크면서 한쪽으로 얼굴이 돌아갑니다. 타조는 날개가 있어도 날지 못하는 반면, 달리기는 그 어떤 육상 동물에 뒤지지 않습니다. 이처럼 글로 모두 적지 못할 만큼 다양한 생물들이 각자 처한 환경에 저마다의 방식으로 적응했습니다. 이렇게 보니 자연에서는 이상함이 일반적인 현상 같습니다.

진화는 적응입니다. 우리의 삶이 종종 이상하다고 느끼는 것은 우리가 그만큼 삶에 적응을 잘하고 있다는 의미겠죠. 그러니 자신을 믿고 나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부족한 글과 만화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내일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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